Wednesday, November 29, 2006

2003년 7월... 재무실에 온 지 일년 반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이론적 기반도 약한데다가 기발한 아이디어 창출 능력이나 철저한 논리력도 부족하여 팀원 역할을 제대로 못 해내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이론적 지식 함양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라는 고민 중에 찾아낸 것이 CFA과정이다. 2003년 12월 1차 시험을 목표로 학원을 등록하고 거의 5년만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렇다면 내가 CFA 1차를 준비하면서 어떤 것을 얻었으며, 그것이 CFA를 따려는 이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과목별로 짚어 보자.

웃기는 말이지만 회계원리를 다시 배우면서 내가 왜 대학교 때 회계를 그리 멀리 했는지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회계의 원리로 접근하지 않고 회계의 방법론만 배웠기 때문이었다. 회계원리를 가르쳐 주신 김성균회계사님은 원리를 스스로 터득한 천재(^^)신 지라 원리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을 갖고 있었고, 그 방식에 따라 설명해 주셨으며, 난 가뭄의 단비를 맞듯 그 분의 원리를 빨아 들였다. (정말 빨아들였다는 말이 정확하다. 쪼악쪼악 원리가 하나씩 몸에 빨리는 느낌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7월과 8월을 그렇게 보내면서 난 만약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후회는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자격증이 아니라 바로 이런 원리에 기반한 이론적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회계원리를 체득하면서 CFA라는 자격증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업무 능력의 이론적 바탕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 모 회계사로부터 수강한 경제학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한번은 강사의 오류를 내가 수정한 적도 있었으니...(난 경제학원론, 미시/거시경제학을 듣긴 했으나 재정정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준이었음에도...) 독학이 시작되었다. 대학 때의 책을 다시 뒤져가며 경제학을 파기 시작했다. 효용이 왜 감소해야만 하는지부터 재정/통화정책이 환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까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러나 경제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신문기사가 눈에 다시 들어오고 아침 뉴스의 경제브리핑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 경제학이 이래서 중요하구나...라는 인식... 인식이 전환되면서 시험을 위한 경제학이 아닌 지식을 위한 경제학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CFA과정의 위력을 절감하면서 공부에 가일층 매진하게 된다. 이후 경제학의 잼뱅이였던 난 경제학을 70%가 넘는 전략과목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게 된다.

Valuation... 주식분석, 채권분석, 파생상품 분석... 말 그대로 난 이 분야의 초등학생이었다. 듀레이션이 먼지, 미래현금흐름의 할인이 먼지... 대충은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니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동훈 회계사님의 강의를 쭉 따라가면서 Valuation의 체계를 감잡게 되었다. 물론 1차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 터라 체계만 잡았다. 1차 과정을 다 마치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했으니... 체계만 잡았다는 것이 제대로 된 설명일 듯 하다. 그러나 그 허술할 듯한 체계는 재무실에서 다루는 많은 업무의 이론적 이해를 도왔다. 특히 채권 파트에 대한 학습은 기업의 자금조달(financing)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Valuation에서 rate(YTM, spot rate, Discount rate, Forward rate, etc)가 어떻게 중요한지 알게 되면서 나머지 개념이나 방법론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러한 채권의 기초적 지식 함양은 파생상품으로까지 연결되어 내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세계로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Corporate Finance... 비중은 작았지만 가장 제대로된 공부를 한 파트이다. 왜냐하면 우리 부서가 다루는 일이 대부분 이 분야이기 때문에... 공부해 보니까 내가 업무 중에 전혀 모르던 내용들이 과거 대학교 교재에 다 나오더라. 이런 것도 모르면서 재무실이랍시도 그때 그때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일을 했으니... 지나간 시간들이 참 난감했다. 아니 쪽팔렸다. 한번은 동기가 IRR이 마이너스가 나오는게 가능하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라? NPV가 0이 작은 것은 알겠는데... IRR이 마이너스? NPV가 0일 때의 평균할인률이 IRR인데 그게 음수라면...? 이건 사실 지금도 좀 헷갈린데... 만약 IRR이 음수라면 '할인하지 않은 미래 수익'이 초기투자비용보다 작으니까 NPV가 0인건 물론이고 액면 그대로 실패할 사업을 의미한다.(IRR<0> NPV<0, 0 =""> IRR>0 OR IRR<0) 아무튼 난 그 당시 이처럼 기초적인 사업타당성 분석개념조차 제대로 설명할 이론적 바탕이 전혀 없었다. 너무 창피했다. 그런데 CFA가 투자를 위한 이론적 바탕을 테스트하는 시험인 관계로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므로 Corporate Finance를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데... 이 점이 바로 CFA가 매우 실질적인 지식을 함양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 금융회사를 다니지도 않는 니가 CFA를 공부하느냐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일반 회사의 재무실에서 일한다면, 금융회사가 아니라고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CFA를 따기 위한 공부는 탄탄한 이론적 체계를 갖게 해 준다. 즉 업무에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난 CFA를 공부한 것이고 지금 2차까지 합격한 상태이며, 3차까지 모두 마칠 예정이다. 위에서는 1차 시험을 보면서 느낀 CFA 과정의 효용을 설명한 것이고, 다음엔 2차 과정을 밟으면 느꼈던 CFA 과정의 효용과 어려웠던 점, 필요한 자세 등을 말하고자 한다.